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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1-20 18:59 조회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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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전투기 3주 새 2대 추락.. 노후화 지적
"中, 군용기 물량공세로 대만 전력 소진 노려"
대만 중서부 자이 공군기지에서 F-16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대만 중서부 자이 공군기지에서 F-16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대만 전투기가 잇따라 추락해 방공망에 구멍이 뚫렸다. 대만해협을 장악하려는 중국의 물량공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과부하가 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세를 잡은 중국은 대만의 전력 열세를 집중 부각시키며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17일 야간 작전에 나섰던 대만 F-16 전투기가 이륙 2분만에 바다에 떨어졌다. 앞서 지난달 29일엔 F-5 전투기가 비행교육 도중 추락했다. F-16은 대만이 1992년 미국에서 150대를 들여온 주력기종이지만, 30년 가까이 운용하면서 9차례 추락해 조종사 7명이 숨졌다. F-5는 미국이 1989년 생산을 중단해 기체 노후화가 더 심각하다.FX마진

대만은 즉각 모든 F-16 전투기 가동을 중단했다. 사고 원인 규명에 시간이 걸려 F-16은 지상에 발이 묶였다. 중국에게 제공권을 내준 셈이다. 10월 한달 중국 군용기는 25일에 걸쳐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하는 등 갈수록 무력시위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대만 타이베이의 한 미술관에 차이잉원(왼쪽) 총통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그린 작품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타이베이=EPA 연합뉴스

대만 타이베이의 한 미술관에 차이잉원(왼쪽) 총통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그린 작품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타이베이=EPA 연합뉴스
앞서 옌더파(嚴德發) 대만 국방부장은 "올해 전투기 긴급발진(스크램블) 횟수가 3,000회에 달한다"면서 "중국 군용기 1,700여대가 대만 영공으로 접근한 데 따른 맞대응 조치"라고 밝혔다. 통상 긴급발진 명령이 떨어지면 전투기는 5~8분 안에 출격해야 한다.

외교 소식통은 20일 "중국은 여러 기지에서 다양한 군용기로 바꿔가며 도발하는 반면 대만은 전투기 숫자가 부족해 같은 기체가 계속 대응임무를 맡다 보니 부담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전투기의 피로도가 누적됐을 거란 얘기다. 영국 가디언은 "중국의 공세는 반응을 떠보면서 대만의 공군전력을 소진시키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중국 J-20 스텔스전투기.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국 J-20 스텔스전투기. 한국일보 자료사진
호재를 만난 중국은 대만을 몰아세웠다. 관영 환구시보는 "중국의 강화된 군사활동에 필사적으로 대응하느라 대만군은 몹시 지친 상태"라며 "정비와 보수에 문제가 많은 낙후한 전투기로는 대만 독립을 꿈도 꾸지 마라"고 지적했다. 중국 인터넷에선 대만을 조롱하며 "F-16 조종사가 대륙으로 귀순했을 것"이란 루머가 떠돈다.

이에 대해 대만 군 당국은 "출격 이전 정비 이력을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기체 결함 가능성을 일축했다. 다만 조종사가 작전대장을 맡고 있는 대령급 지휘관이어서 조종 실수로 결론짓기도 부담이 큰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대만은 F-16 보유량을 200여대로 늘리는 등 전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만 당초엔 미국에서 F-35 스텔스전투기를 도입하려다 요구 성능을 한 단계 낮춰 66대의 F-16V 구매로 선회했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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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청 탐지견훈련센터 가보니

생후 12개월 이후부터 16주간
7종 마약과 화학류 적발 훈련
3건 중 하나 탐지견이 찾아내


인천 영종도 관세국경관리연수원 탐지견훈련센터에서 마약 탐지견 해솔이가 지난 17일 훈련교관과 함께 여행용 캐리어에 숨겨진 대마를 찾고 있다. [한주형 기자>]
해솔이(래브라도레트리버)가 여행객 10명, 여행용 캐리어 26개 사이에 숨겨진 마약을 찾아내는 데는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캐리어들을 무심히 훑는가 싶더니 이내 밀봉된 대마초가 들어 있는 은회색 캐리어 앞에 정확히 털썩 주저앉았다. 찾았다는 신호다. 해솔이는 파트너에게 '소소한 성공 보수'를 받은 뒤 재빠르게 다음 캐리어로 자신의 코를 들이밀었다.

지난 17일 방문한 관세청 산하 관세국경관리연수원 탐지견훈련센터에서는 해솔이를 비롯한 탐지견과 예비탐지견 총 34마리(11월 기준)가 한국을 마약 청정국으로 만들기 위해 약 냄새를 익히고 있었다. 센터는 인천 영종도에 있는데, 근처에는 한국의 물류 허브인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이 있다. 이곳 견공들의 주요 타깃은 대마, 필로폰, 아편, 헤로인, 코카인, 헤시시, 엑스터시 등 마약 7종이다.

센터에 따르면 탐지견은 인간보다 약 40배 많은 후각세포(1억2000만~2억2000만개)로 마약·화약류 등을 탐지한다. 대략 생후 12개월 이후부터 16주 훈련 과정을 거치는데, 탐지견 평가에 최종 합격하면 마약탐지조사요원과 한 팀이 돼 탐지조로서 통상 7~8년 동안 마약 탐지 임무를 수행한다. 주요 훈련으로는 환경 적응, 체력 증진, 담력 배양, 냄새 인지 등이 있다.

한 교관은 지난해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밴쿠버발 여객기 승객들을 탐지하던 중 예상 밖 여성 승객에게서 마약을 적발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당시 주디(탐지견)가 한 여성의 캐리어 주변을 계속 맴돌며 앉기를 반복했지만, 내심 오반응일 수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주디가 훈련 과정에서 마약을 발견했을 때 일관되게 보여줬던 '꼬리 흔들기' 반응까지 보이자 비로소 확신이 섰다"고 회상했다.

관세청은 1987년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미국 관세청에서 탐지견 6마리를 기증받은 이래 11월 현재 총 77마리의 탐지견(예비탐지견 포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43마리는 전국 세관에 투입돼 활동하고 있다. 특히 지난 11일 시작된 중국 광군제에 이어 다음주 미국 블랙프라이데이(27일)가 예정돼 있어 이후 벌어질 '해외직구 대란'에 탐지조와 관세청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인천본부세관 관계자는 "광군제와 블프 기간 이후에는 통상 특송 화물 물량이 20~50%가량 불어나기 때문에 마약 밀수 적발에 더욱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특송 물량이 급증한 틈을 타 국내로 파고드는 마약류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탐지조의 마약류 단속 실적은 전체 단속 실적에서 비중이 상당하다. 2017년 마약류 밀수 단속 건수 429건 중 탐지조가 적발한 건수는 168건(39%)이다. 2018년엔 659건 중 263건(40%), 2019년엔 661건 중 156건(24%)으로 집계돼 전체 마약류 밀수 적발 건수 중 24~40%를 탐지조가 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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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둔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보도진들이 취재 준비를 하고 있다.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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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제스 |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예쁜 딸을 키우는, 육아하는 아빠

'스르릉 스르릉'

방에 누워 있으면 쇠 파이프 끄는 소리가 들린다. 매일 밤 용역 직원이 저런 소리를 내며 동네 구석구석을 다닌다. 골목 끝에서 시작된 소리는 집 앞을 지날 때 가장 커진다.FX시티

'스르릉 스르릉'

한강로 3가 63번지. 나는 이 동네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교를 거쳐 군대까지 갔다 왔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오니 우리 동네에 새로운 이름이 붙어져 있었다.

'용산4구역 도시환경 정비구역'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된 우리 동네는 곧 철거된다고 했다. 한 집 두 집 동네를 떠나기 시작했다. 이사 간 집에는 빨간 스프레이로 '공가'라는 글씨가 써졌다. 늘 인사하고 지내던 앞 집도, 옆집도 이사를 가고 대문에는 크게 '공가'라는 글씨가 칠해졌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었다. 문은 비틀어져 있고 마당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흉물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이 골목에서 남은 집은 우리 집과 골목 끝 슈퍼마켓 뿐이었다.

사람이 떠나 간 동네는 밤이 되면 더 적막해졌다. 인기척 없는 골목에 어둠이 내리면 묵직한 적막을 뚫고 '스르릉' 하는 쇠 파이프 소리가 들려왔다. 내 방은 골목과 벽 하나 사이를 두고 있어 그 소리가 매우 선명하게 들렸다. 소리는 골목이 끝나는 곳까지 이어지다가 희미해지면서 동네 어딘가로 향해 사라져 갔다.

'저 쇠파이프를 끌고 다니는 사람은 누굴까?' 동네 사람들은 그들을 용역 직원 또는 '용역 깡패'라고 불렀다. '스르릉' 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용역이 그대로 우리 집으로 들이닥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매일 밤 불안했다. '왜 이사를 가지 않냐?'고 아버지를 재촉했지만 그때마다 '이 보상비로는 어디 갈 데가 없다'는 말씀만 하셨다. 어디라도 빨리 이사 가자는 어머니와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아버지 사이에 매일같이 말다툼 있었다. 내게 집은 더 이상 쉼터가 아니었다. 나는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라도 도서관 문 닫는 시간까지 버티다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듬해 1월 겨울방학, 아침 일찍 영어 학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여느 날처럼 삼희약국 사거리를 지나고 있었는데 용산역 쪽에서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는 게 눈에 들어왔다. 순간 불길함이 엄습해 왔지만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아침 8시까지 영어 학원에 가야 했으므로 발길을 서둘렀다.

"야, 오늘 용산에서 불났대. 엄청 큰불이라던데"
'어? 용산이면 우리 동넨데..'

그날 점심시간, 나는 밥 먹던 숟가락을 멈추고 그 친구에게 물었다.

"용산 어디?"
"용산역 앞이라는데... 사람이 죽었대"

나는 순간 아침에 봤던 그 검은 연기를 떠올렸다. '에이 설마.' 내가 지나친 그곳에서 사람이 죽었을 리 없다.

2009년 1월 20일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농성 중이던 철거민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불이 번졌다. 그 화재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했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사망자 중에는 경찰도 있었고 동네 주민도 있었다. 남일당, 전철연, 경찰특공대, 강제 진압, 화재. 그런 단어들을 기사로 접했다. 믿기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우리 동네에서 사람이 죽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이후 사람들은 그 사고를 '용산 참사'라 불렀다.

사고가 난 남일당 앞에서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임시 분향소가 차려졌다. 각계 인사들이 분향소를 찾고 사회 곳곳에서 희생자를 애도하는 물결이 일었다. 그러나 정작 나는 그 현장에 갈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버스를 타러 갈 때도 남일당을 피해 빙 둘러 갔고 관련 기사도 일체 찾아보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우리 동네에서 사람이 죽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당시 세입자, 철거, 참사와 같은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군대를 전역한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았고 알바와 과외를 병행하며 가까스로 학기를 마쳤다. 대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누구는 여행을 가고 누구는 인턴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근근이 학업을 이어 가는 상황이었다. 이제 곧 4학년이 되어 취업 준비해야 하는 상황인데 학점도 토익 점수도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공부 말고는 다른 것을 생각하거나 내 마음을 추스를 방법이 없었다. 그땐 공부만이 이 참담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나를 용산 참사와 나를 분리함으로써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사고 이후에도 그 동네에서 두 달 남짓 더 살았다. 그해 봄 우리 가족은 동빙고동에 있는 반지하에 월세를 얻어 이사를 갔다. 볕이 안 들긴 했지만 화장실이 집 안에 있어 좋았다. 이듬해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몇 년 후 누나와 나는 결혼을 하고 출가를 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용산 참사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11년이 더 지난 지금 다시 용산 참사를 꺼내 본 이유는 저번 달에 부모님이 그 동네로 다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철거민 중 우리 부모님은 공공임대주택 입주 조건에 맞아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분이 겨우 지낼 작은 평수지만 햇볕도 잘 들고 쫓겨날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집이었다. 아파트에서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내려다보였고 자주 갔던 놀이터도 여전했다. 오래 걸렸어도 다시 이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분들이 있다. 옛 남일당 자리에 우뚝 솟아 있는 고층 빌딩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 늦더라도 함께 할 수는 없었을까. 건물이 조금 늦게 올라가더라도 분명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멀리 돌아가더라도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리다.

집이란 무엇일까.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 집은 재산을 불리는 도구가 아니었다. 집은 가족이 함께 모여 따뜻한 밥을 먹고 바깥일을 마치고 돌아와 쉬는 곳이며, 밤에는 편히 잠들 수 있는 보금자리다. 더 이상은 '스르릉' 쇠 파이프 소리를 들으면서 불안에 떠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매일 밤 각자의 보금자리에서 편안하게 잠자길 바라는 게 너무나 비현실적인 것일까?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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