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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8-01 13:44 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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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한국현대사]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



▲ 코발트 광산 유골
ⓒ 진실위 자료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8월 경북 경산시 코발트 광산에서 군경이 보도연맹원과 교도소 재소자 등 수천 명을 무차별 학살하는 참상이 발생한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왜 우리나라 군경은 자국민을 무차별 학살한 것일까?

지난 2007년 필자는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실위)에 몸담았을 당시 민간인 학살 장소인 경산 코발트 광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지금은 부경대 교수로 있는 그때 진실위 동료였던 노용석 박사의 안내로 필자는 코발트 광산 학살현장에서 차디찬 학살 희생자의 유골들과 대면했다. 당시 무더운 여름이었는데도 학살 현장은 냉기로 가득해 오히려 한기로 몸을 떨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파워볼사이트
이승만 정권이 만든 관변단체인 보도연맹은 할당제가 있었다. 그래서 마을의 구장이나 읍장 등은 보도연맹의 인원 수를 채워야 했고 당시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쌀, 밀가루, 비료 등을 주며 가입을 권유했다.

또한 실제 좌익 활동을 한 사실이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빨치산에게 식량을 제공했거나 오히려 그들에게 피해를 당했는데도 빨치산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많은 농민들이 보도연맹에 가입되었다.

보도연맹원이었던 변아무개는 "남로당에 가입한 사실이 없는데도 경찰이 보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해 가입하게 되었으며 가입신청서에 서명을 하거나 도장을 찍으면 되었다"라고 지난 2009년 진실위에서 증언했다.

경찰이 강요해 보도연맹에 가입


▲ 코발트광산 유골
ⓒ 진실위 자료


당시 청도경찰서에 근무한 손아무개는 지난 2007년 진실위에서 "보도연맹원 중에는 사상이 뭔지도 모르고 경찰에 의해 가입된 경우도 꽤 많았다. 경찰이 권유 또는 강요해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보도연맹에 가입시킨 사실이 있다"고 증언했다.

결국 대다수가 농민들인 보도연맹원들은 한국전쟁 전, 아무것도 모르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단지 쌀, 밀가루, 비료 등을 준다는 권유에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보도연맹원은 예비 검속에 따라 경찰서 유치장, 교도소, 창고 등에 구금되었다.

그 무렵 경찰에 예비 검속 된 후 풀려난 고아무개는 예비 검속 후의 과정을 지난 2007년 진실위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쌀 한 말을 준다고 해서 보도연맹에 가입했는데 전쟁이 나고 지서에 연행되어 지서 인근 창고에 구금되었다. 얼마 후 그곳에 잡혀 있던 사람들과 굴비 엮이듯 몸에 줄이 묶여 청도읍의 농업 창고로 이송되었는데 농업 창고에는 이미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잡혀와 있었고 산동 지역에서 잡혀온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곳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났는데 풀려나지 못한 사람들은 아침에 트럭에 실려 산동 방향으로 실려 갔으며 그 중 많은 수가 곰티재에서 희생되었다.

당시 경산경찰서 직할 파출소에서 경비 근무를 했던 길아무개는 경산 지역에서 실시된 예비 검속에 대해 지난 2008년 진실위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경산경찰서 관할 지서에서 보도연맹원들을 포함한 좌익에 협조한 사람들을 경산경찰서로 연행했다. 연행된 사람들은 경산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었는데 유치장이 좁아 약 50평 규모의 무도장에 200~300명가량의 사람들이 구금되었다.

이유도 모른 채...


▲ 코발트광산 입구
ⓒ 진실위 자료


이렇게 구금된 민간인들은 이후 대구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다수 재소자들과 함께 1950년 7월부터 8월 중순까지 경산 코발트 광산 등에서 이유도 모른 채 군경에 의해서 집단학살 되었다.

1950년 늦여름 청도경찰서 소속으로 유치장 경비 근무를 했던 이아무개는 당시 유치장 상황과 선배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지난 2007년 진실위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어느 날 유치장에 잡혀 있던 사람들 중 보도연맹원들만 사라졌는데 그들은 트럭에 실려 경산으로 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 선배 경찰들이 보도연맹원들을 경산 코발트 광산에 집어넣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또한 그 무렵 경북경찰국에 근무한 노아무개는 "청도 등에서 잡혀온 보도연맹원들이 대구형무소에 구금되거나 경산 코발트 광산과 가창골 등으로 끌려가 사살되었다는 이야기를 당시 현장을 다녀온 경북경찰국 사찰계 형사들에게서 들었다"라고 진실위에서 회상했다.

당시 대구형무소 간수로 근무한 하아무개는 2008년 진실위 조사관에게 당시 상황을 이렇게 진술했다.

1950년 7월경 대구형무소는 군 형무소와 함께 사용되었다. 당시 형무소에는 헌병대가 파견되어 있었다. 대구형무소에는 수용인원을 초과할 만큼 재소자가 많이 있었는데 어느 날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이 형무소로 끌려왔으며, 그 사람들은 형무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모두 경산 코발트 광산으로 끌려가 처형당했다고 군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 무렵 경산 코발트 광산 인근 마을인 압량면 갑제동에 거주했던 문아무개는 당시 코발트 광산에서의 학살 과정을 직접 목격했는데 그때 상황을 진실위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전쟁이 나고 7월 20일이 지났을 무렵 산에서 소에게 꼴을 먹이고 있던 중 덮개를 씌우고 군인들이 올라탄 트럭들이 경산 코발트 광산 방향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광산으로 올라간 차들은 수직 굴 밑에 삼베 및 모시옷 등을 입고 실려 온 사람들을 하차시켰으며 약 10명씩을 수직굴로 데려가 총살을 시켰다. 당시 사살현장에는 헌병과 경찰이 있었는데 그때 광산에서 처형된 사람들은 경산에서 경찰에 예비검속된 사람들과 대구형무소에 구금되어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때 경산군 청년방위군 교육생이었던 박아무개는 "당시 사건 현장인 코발트 광산 주위가 헌병과 경북지구 CIC 경산 파견대에 의해 통제가 되어 있어 사건 현장에 대한 접근이 어려웠으며 단지 사람들을 태우고 광산으로 이동하는 트럭을 멀리서만 지켜보았다"라며 진실위에서 회고했다.

또한 당시 경산 안심면에 거주했던 이아무개는 청년방위대 경산지대 중대장으로 근무했던 매형으로부터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일어난 학살사건에 대해 전해 들었다며 지난 2009년 진실위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매형은 경산지역 방위장교로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사람들이 총살될 때 현장에 있었다. 매형은 현장에서 누군지는 몰라도 총을 쏘라는 지시를 했는데 도저히 총을 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매형은 계속된 총살로 광산의 수직굴이 가득 차자 수직굴 옆 골짜기에 땅을 파고 총살을 계속했다고 했다.홀짝게임

당시 대구형무소에 파견되어 있던 국군 제22연대 헌병대원인 박아무개는 "전쟁 직후 200~300명 규모의 형무소 재소자들을 본인과 헌병대원들이 직접 인솔해 칠곡 신동재로 데려가 사살했다. 이후 형무소 근무를 교대했는데 교대한 다른 소대원으로부터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재소자들을 사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2008년 진실위에서 진술했다.

10일간 지속된 학살


▲ 코발트광산 유골
ⓒ 진실위 자료


당시 코발트 광산 학살 현장인 수직굴과 약 50~100m 떨어진 곳에서 청년방위대원으로 경비근무를 했던 김아무개는 코발트 광산 희생자의 신원과 수에 대해 지난 2008년 진실위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1950년 7~8월경 헌병과 경찰들이 대구형무소에서 끌고 온 사람들을 코발트 광산으로 데려와 물이 차있던 수직 동굴 앞에서 처형했는데 당시 처형장 50~100미터 주변에는 본인을 포함해 청년방위대원들이 M-1 소총을 소지하고 경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대구에서는 30~40명의 사람들을 실은 트럭이 하루에 많게는 8대 이상 왔으며 군경에 의한 처형은 약 10일간 지속되었다.

진실위 조사 결과 당시 경산 코발트 광산으로 끌려가 사살될 뻔했으나 다행히 총탄에 맞지 않고 생존한 경우도 확인되었다. 영동군 학산면에 거주하던 이아무개의 아내 한아무개는 "사람들을 나란히 앉혀 놓고 군인들이 '발사'라고 소리를 치며 사살이 시작됐는데 남편은 총에 맞지 않아 숨어 있다가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대구로 도주했다"라며 지난 2009년 진실위에서 진술했다.

또한 2007년 충북 영동군 양강면 가동리에 거주하던 최아무개는 "남편인 정아무개가 보도연맹원으로 끌려 간 것은 아니지만 대구에서 검거되어 수직굴이 있는 광산으로 끌려가 각이 선 모자를 쓴 군인 복장 풍의 사람들에 의해 수직굴 앞에서 총격을 당했는데 다행히 줄이 풀리고 심한 총상을 입지 않아 살아나왔다"라며 진실위에서 회고했다.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학살 사건이 발생한 후 10년이 지난 1960년 4․19 직후에 이 지역에 대한 유해 발굴이 실시되었다. 그때 유해 발굴 과정에 참여했던 경북유족회의 이복녕은 "당시 현장에 지금보다도 시신의 수가 수도 없이 많았으며 인근 대원골 골짜기에는 시신으로 인한 핏물이 많이 흘러 인근 주민들이 아주 애를 먹었다"라고 지난 2006년 진실위에서 증언했다. 그 후 진실위가 실제 유해를 발굴한 결과 코발트 광산 내부뿐만 아니라 그 인근 골짜기인 대원골에서도 수십 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피해자 측 참고인들은 "이 학살 사건의 희생자 대부분이 농사를 지으며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좌익에 협조한 사람들이었지 적극적으로 좌익 활동을 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라고 진실위에서 하소연했다. 더구나 당시 경산경찰서 소속으로 근무한 경찰들조차 "이 학살사건의 희생자 대다수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라며 진실위에서 진술했다.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 무렵 청도경찰서에 근무한 손아무개는 "빨갱이들 때문에 민간인들이 피해를 많이 봤는데 당시 빨갱이로 몰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라고 지난 2007년 진실위에서 증언했다.

또한 청도경찰서에 근무했던 이아무개는 "당시 보도연맹원들이 재판도 받지 않고 불법적으로 사살되었는데 그 사람들의 경우 재판을 받았으면 다 살았을 사람들이었다" 라고 진실위에서 회고했다.

"억울하고 아까운 죽임을 당했다"


▲ 코발트광산 유골
ⓒ 진실위 자료


이 학살 사건 발생 무렵 경산경찰서에 근무한 신아무개는 "당시 경산지역에서 죽은 사람들 대다수는 실제 좌익 활동과 무관한 사람들이었던 관계로 억울하고 아까운 죽임을 당했다"라며 지난 2009년 진실위에서 증언했다.

또한 경산경찰서 직할 파출소에 근무했던 길아무개 역시 "당시 경찰서로 잡혀온 많은 사람들은 억울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라고 진실위에서 진술했다.

당시 청년방위대원으로 경산에 갔다 돌아온 이선희와 강태석은 "경산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경우 실제 좌익 활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좌익이 뭔지도 모르고 보도연맹에 가입되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었다"며 지난 2008년 진실위에서 증언했다.

위와 같은 여러 증인들의 진술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경산지역 보도연맹 희생자들은 대부분 그저 순박한 농민들이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빨치산에 단순 협조하거나 심부름 등을 했다는 이유로 보도연맹에 가입되어 한국전쟁 직후 억울하게 학살된 사람들이었다.

당시 청도경찰서 외근계에 근무한 이아무개는 "선배 경찰들이 보도연맹원들을 경산 코발트 광산으로 끌고 가 밀어 넣고 왔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라고 지난 2008년 진실위에서 진술했다.

또한 경산지역 청년방위대원으로 코발트 광산에서 교도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에 대한 학살이 있을 당시 현장 경비를 했던 김아무개는 "사건 현장에서는 대체로 군인들이 처형을 주도했으나 군이 물러난 이후에는 경찰들이 사람들을 처형했다"라며 회상했다.

뿐만 아니라 경산 코발트 광산 인근의 갑제동 뒷산에서 총살 과정을 지켜본 문아무개는 "광산으로 끌려온 사람들에 대해 경찰과 군이 총살을 집행했다"라며 진실위에서 증언했다.

진실위 조사 결과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의 직접적인 가해 기관은 각 지역 경찰서, 경북지구 방첩대(CIC)와 각 지역 CIC파견대 그리고 국군 제22헌병대로 밝혀졌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이승만 정권의 내무부 치안국-경북지방 경찰국-각 경찰서, 육군본부와 경남북지구 계엄사령부로 이어지는 지휘명령체계 속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학살을 자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승만 정권의 우리나라 경찰은 무늬만 대한민국 경찰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이승만의 비호를 받은 친일경찰은 일제강점기 일본 순사들보다 더 악독했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일제강점기 민족을 상대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친일파들은 해방 후에도 그대로 경찰복을 입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에게 가했던 일본순사에게 배운 잔인한 고문기술을, 그대로 해방된 국민을 상대로 써먹었다.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불법 학살

2009년 진실위는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일차적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과 경찰이 관할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과 대구형무소에 미결 또는 기결상태로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을 불법 사살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이다. 비록 전시였다고 하더라도 민간인들을 예비검속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살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다.

한편 한국전쟁 이후 경산 코발트 광산 유족들은 조금씩 유해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난 2005년 진실위가 설립되고 국가 차원의 발굴이 2007년부터 약 3년 동안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지난 2010년 진실위는 해산되었고 국가 차원의 유해발굴은 멈췄다.

아직도 천여 구 이상의 유해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경산 코발트 광산 주변에는 지금 요양병원과 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지금까지 진실위 등에서 발굴한 유해는 총 560여 구로 현재 세종시에서 보관 중이다.

진실위는 경산 코발트 광산 등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전체 희생자 수를 최소 1800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조상을 잘 모시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려왔다. 그런데도 최소한 천여 구 이상으로 추정되는 조상의 유골을 습기가 가득한 굴 속에 그대로 방치하는 만행을 우리는 언제까지나 계속할 것인가?



[OSEN=광주, 이선호 기자] "실전 나선다".

박흥식 KIA타이거즈 퓨처스 감독이 부상 재활중인 내야수 류지혁(26)의 실전 일정을 밝혔다. 2일까지 기술훈련을 마치고 다음주부터 바로 실전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류지혁의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 31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퓨처스리그 야간경기를 위해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를 찾은 박 감독은 "생각보다 부상 회복이 훨씬 빠르다"며 류지혁의 근황과 실전 일정을 밝혔다.

박 감독은 "현재 재활조과 잔류조를 오가며 기술훈련을 하고 있다. 수비도 어제부터 훈련했다. 몸놀림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번 주말까지는 기술훈련을 진행한다. 주루도 조금씩 하고 있다. 일요일에 전력질주를 포함해 주루도 최종 점검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실전 투입에 대해서는 "기술 훈련을 마치면 다음주 퓨처스 팀에 합류해 실전을 소화할 것이다"라고 계획을 밝혔다. KIA 퓨처스 팀은 4일부터 KT위즈와의 경기를 위해 수원 원정길에 나선다.

박 감독은 "물론 풀타임 출전은 아니다. 조금씩 뛰게된다. 타격, 수비, 주루까지 모두 점검한다. 정확한 복귀 시기도 점검후에 나올 것이다"고 말했다.

풀타임 이닝까지 점검을 마쳐야 1군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복귀 시기는 이르면 두 번째 주(8월 11일)가 될 가능성도 있다. KIA는 김선빈이 허벅지 부상을 딛고 지난 달 31일 1군에 복귀한 가운데 완전체 전력을 앞두고 있다.

홍건희과 맞트레이드로 두산을 떠나 KIA 유니폼을 입은 류지혁은 지난 6월 14일 SK와이번스와의 인천경기에서 9회초 1사후 내야안타로 출루해 후속타자의 안타때 3루까지 달리다 오른쪽 허벅지 부상을 당했다.

한국 게임의 중국 진출이 4년째 막혀있다. 과거 중국 진출에 성공해 현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크로스파이어(스마일게이트), 던전앤파이터(넥슨) 캐릭터. 김정민 기자

'7억 명짜리 시장을 포기할 것이냐.' 진입로가 꽉 막힌 중국 시장을 바라보는 한국 게임사들의 속내가 복잡하다. 중국 내 한류 금지령, 일명 '한한령(限韓令)'으로 한국 게임사들이 4년째 중국에서 판호(版號·중국 내 게임서비스 허가)를 못 받자 중소 게임사를 중심으로 대안 마련에 분주해졌다.

무슨 일이야?
한국 게임의 중국 재진출 가능성을 놓고 전망이 계속 엇갈린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 게임사들은 답답하다.
· 중국 정부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차원에서 2017년 3월부터 한국 게임사에 단 한 건의 판호도 내주지 않고 있다.
· 외교부는 지난달 처음으로 판호 문제를 한중관계 주요 과제로 선정했다. 시진핑 주석의 연내 방한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 지난 29일 위정현 중앙대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국회 콘텐츠미래융합포럼 '중국 게임 판호 전망과 방안 모색' 세미나에서 판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적극적인 관심 ▶외교부의 태도 변화 ▶코로나19 이후 한중 협력모드 ▶미중 대립 국면에서 한국을 포섭하려는 중국의 동북아 전략 등을 근거로 꼽았다.
· 그러나 같은 세미나에서 '중국통' 우수근 산동대 교수는 "중국 내부는 판호를 풀어주려다 위축된 상태다. 한국 정부가 최근 G7 확대체제 합류 의사를 밝히는 등 친미 행보를 보여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


중국 정부의 연도별 판호 발급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게 왜 중요해?
· 중국은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이다. 중국게임공작위원회(GPC)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게임시장 규모는 39조 2000억원, 게임 이용자는 6억 5000여 명이다. 게임업계는 "중국 시장의 1%만 차지해도 한국 내 시장점유율 10%보다 매출 규모가 더 크다"고 본다.
· 게임은 국내 콘텐트업계에서 '외화벌이'를 가장 잘 하는 산업이다. 지난해 콘텐트 해외 수출액 104억 달러 중 70억 달러(67%)가 게임이다.
· 한한령으로 날린 한국의 기회비용은 연간 2조5000억원. 지난 실적으로 추산하면 4년간 7조5000억원~15조원의 매출이 사라진 셈.


2019년 콘텐트 산업별 수출액. 11개 분야 중 나머지 생략.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중국 포기하자"
게임산업계에선 판호 발급이 재개돼도 예전같은 장밋빛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 한국 게임의 기술력과 기획력이 중국을 압도했던 몇 년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중국은 더이상 신흥 성장 시장이 아니다. 2017년까지 20%대였던 중국 게임산업 성장률도 5~7%대로 떨어졌다. 중국 내 전체 게임 매출의 50%를 '빅2'(텐센트·넷이즈)가 양분하며 시장도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 황성익 한국모바일게임협회 회장은 이날 "판호를 받는다고 다 성공하는 게 아니다. 매년 중국 게임사 1만8000개가 폐업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다. 한국 중소기업이 중국에 가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접 진출보단 좋은 지식재산(IP)을 개발해 현지 회사에 팔고 로열티를 받는 게 낫다"고 했다.
· 윤선학 중원게임즈 대표는 "한국은 모바일 게임에서 중국에 패권을 완전히 뺏겼다. 이젠 중국 게임들의 기획력이 더 우수하다. 중국만 보지 말고 동남아 등 다른 신흥시장을 찾아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포기 못 해"
중국에서 판호도, 인기도 미리 따놓은 중·대형 게임사들은 입장이 다르다.
· 대형 게임기업 관계자는 "중국은 이용자 단위 자체가 다르다. 신작을 낸다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 익명을 원한 한 게임사는 "스마트폰 보급률, 모바일 결제시장 규모(연 3경원)을 봤을 때 중국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정치적 문제를 정부가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 위정현 교수는 "중국을 포기하고 다른 시장을 찾자는 것에 공감할 수 없다"며 "진출할 곳은 이미 다 했다. 그나마 중국이 이용자가 많아 틈새시장도 많다"고 강조했다.


올해 상반기 국가별 판호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앞으로는
· 국내 게임사들은 IP 사업으로 활로를 모색 중이다. 웹젠의 '뮤' IP 기반 중국 게임 '전민기적2'는 중국 개발사 천마시공과 텐센트가 공동 제작해 이달 1일 판호를 취득했다. 웹젠은 순수익의 6~10%를 로열티로 받는다.
· '배틀그라운드' 개발사 펍지(크래프톤)는 함구 중이나, 게임업계는 중국 텐센트가 지난해 '배그 모바일' 서비스를 중단하고 선보인 게임 '화평정영(和平精英)'의 로열티를 크래프톤에 주고 있을 것으로 본다. 화평정영은 배그 모바일 복사판이라 할 정도로 유사하다는 평을 들었다. 크래프톤의 1분기 영업익(3524억원)은 엔씨소프트(2414억원)를 넘어섰다.
· 게임을 부품처럼 쪼개팔자는 의견도 나왔다. 김상현 한국콘텐츠진흥원 북경센터장은 "IP·음악·그래픽 등 게임에 들어가는 요소를 기초산업 단위로 수출하자"고 제안했다. 특히 IP사업을 강조했다. "일본이 올해 상반기 12건의 판호를 따낸 건 '나루토' '헌터X헌터' 등 중국인이 먼저 찾는 인기 IP였기 때문이다. 한국 게임·웹툰·예능 IP를 활용하자"는 것.
· 장기적으론 중국서도 모바일 게임과 여성 이용자를 노리는 게 답이 될 수 있다. 지난해 판호를 받은 게임 중 93%가 모바일 게임이었다. 틈새시장 면에선 여성 이용자가 증가 추세다. 지난해 4분기 3억명에서 올해 1분기 3억5000명으로 17% 늘었다. 중국 정부가 중국 문화와 교육적 가치가 담긴 게임을 선호하는 것도 참고사항.


중국 내 한국 IP 활용의 대표적인 예. 스마일게이트의 대표작 '크로스파이어'를 배경으로 한 중국 웹드라마 '천월화선'이 지난 24일 2회 방영분 기준 텐센트 비디오에서 인기 드라마 2위를 기록했다. 현재 누적 시청 수는 2억4000만회 이상. 사진 스마일게이트
싼샤댐에서 물이 방류되고 있다. 출처-웨이보 갈무리© 뉴스1
싼샤댐에서 물이 방류되고 있다. 출처-웨이보 갈무리© 뉴스1
(서울=뉴스1) 윤다혜 기자 = 중국 양쯔걍 유역에 한 달 이상 폭우가 지속되며 세계 최대 댐인 싼샤댐의 수위가 급증하자 중국 안팎에선 싼샤댐 붕괴설이 나오고 있다.

"싼샤댐이 붕괴되면 담수가 한반도 남부 바다와 서해로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와 한국도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는 우려가 나오는 등 한국에서도 싼샤댐 붕괴는 초미의 관심사다.

싼샤댐은 정말 붕괴될까? 싼샤댐 붕괴설은 그저 '설'일 뿐, 붕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은 Δ 과거에도 한계수위에 다다른 적이 있는 점 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할 과학적 근거가 있는 점 Δ 수압으로 인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적은 점 Δ 당국이 인근 주민들에게 아직 대피령을 내리지 않고 있는 점 등 4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후베이성 이창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싼샤 댐이 수위 급상승으로 물을 방류를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후베이성 이창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싼샤 댐이 수위 급상승으로 물을 방류를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 과거에도 한계수위 다다른 적 있어 : 싼샤댐 붕괴설의 근거 중 현재 가장 주목받는 것은 수위가 한계수위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싼샤댐의 수위가 165m까지 올라가 한계수위인 175m에 겨우 10m 모자라는 선까지 왔기 때문에 댐이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역대 싼샤댐의 수위를 보면 한계수위인 175m를 기록한 것이 2010년 이후 4번이나 된다. 처음 한계수위까지 차올랐던 2010년 당시 싼샤댐엔 별다른 결함이 발생하지 않았다.

◇ "안전성 문제없다" 과학적 근거 있어 : 싼샤댐 붕괴설의 핵심은 '싼샤댐이 과연 안전한가' 여부다.

싼샤댐은 부실 공사 의혹이 제기되며 댐의 안전성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전문가들은 싼샤댐 건설 공법 등 과학적 근거를 들어 싼샤댐은 안전하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중국 수자원 전문가 왕하오 공정원 원사는 "싼샤댐은 100년간은 침수될수록 오히려 더욱 견고해지는 RCC(Roller Compacted Concrete) 공법으로 건설했기 때문에 홍수로 장기간 침수돼도 끄떡없다"고 말했다.

또 중국 역사상 최악의 홍수로 기록된 1870년 당시 물의 양쯔강 초당 유입량이 10만5000㎥였다. 싼샤댐은 이보다 10% 더 많은 최대 12만4300㎥ 유입량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이번 홍수로 붕괴될리는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 후베이성 우한 한커우 유역의 초당 물 유입량은 6만1200㎥로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싼샤댐 최대 유입량의 약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15일 (현지시간) 중국 최대 담수호인 포양호 인근 장시성 상라오의 주민들이 폭우로 물에 잠긴 마을에서 보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15일 (현지시간) 중국 최대 담수호인 포양호 인근 장시성 상라오의 주민들이 폭우로 물에 잠긴 마을에서 보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 물 압력으로 지진 초래?…'과장' : 일부에서는 총저수량 393t의 싼샤댐이 엄청난 무게로 지반을 눌러 지진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싼샤댐은 공교롭게도 단층지대에 놓여 있는데, 댐에 투입된 46만t의 철근·콘크리트 무게와 막대한 물의 압력이 합쳐져 지진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주장은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싼샤댐은 세계 최대 수력발전소다. 높이 185m, 길이 2309m, 너비 135m에 달한다. 하지만 저수량으로 보면 세계 10대 댐 순위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실제 싼샤댐의 최대저수량은 390억t으로, 저수용량으로 따지면 21위 수준에 그친다. 세계에서 저수용량이 가장 큰 댐은 우간다의 오웬 폴스 댐으로 저수용량이 2048억t에 달한다.

14일 (현지시간) 중국 최대 담수호인 장시성 주장의 포양호가 계속된 폭우로 범람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이 대피를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14일 (현지시간) 중국 최대 담수호인 장시성 주장의 포양호가 계속된 폭우로 범람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이 대피를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 '주민대피령' 조차 없어 : 싼샤댐 안과 주변에는 약 1만2000개의 안전 모니터 장비가 설치돼 있다. 당국은 이를 통해 댐의 변형, 침수, 지진, 수압 등을 관찰한다.

만약 싼샤댐에 문제가 생기면 중국 정부는 이를 즉각 알 수 있다는 얘기다. 만약 문제가 붕괴 위험까지 초래할 수 있다면 중국 정부는 당연히 주민 대피령을 내렸을 것이다.

비록 주민 대피령의 이유를 '싼샤댐 붕괴 위험'이 아닌 '강한 비로 인한 주택 침수 우려' 등으로 에둘러 말했을지라도 싼샤댐 인근 주민들을 대피시켰을 것은 확실하다.

만약 싼샤댐이 붕괴되면 중국 중남부 지역에서 4억~6억 명의 이재민이 나올 정도의 대재앙이 발생한다. 대재앙은 민심을 동요시키고, 요동치는 민심은 중국 공산당을 향할 것이 분명하다.

명확한 근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싼샤댐 붕괴설이 일파만파 퍼지는 건 과거 1975년 24만명의 사망자를 초래한 반차오댐(板橋) 붕괴의 두려운 기억 탓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톱스타뉴스 김아현]前여자배구 현대건설 고유민이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1일 경기 광주경찰서에 따르면, 고 씨는 전날 오후 9시40분경 광주시 오포읍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연락이 닿지 않자 동료들에 의해 먼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파워사다리

경찰은 고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외부인의 침입 등의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고유민은 지난 3월 현대건설을 떠났다. 당시 2013년부터 현대건설에서 레프트 역할로 활동해왔다. 지난 2월에는 리시브 효율 0이후 경기를 패배했고, 이후 당시 악플에 시달리자 인스타그램을 비공개로 전환하기도 했다. 배구계를 떠난 이후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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